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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이야기

편지(못난이주의보84회를 보고나서)

1. 경태아버지

 

요즘 들마의 악역을 혼자 도맡아 하다보니,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쁘신

이변께서 드뎌 외국에서 요양중이신

경태아버지까지 불러들이셨다.

 

혼자서 준수, 도희, 인주샘, 정연,

나사장, 나회장등등을 모두 상대하느라

지칠 법도 하다.

 

아마도 나회장, 나사장등 어른급은

경태아버지가 상대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원군을 요청한 모양이다.

 

휠체어 타고 망가질대로 망가지신

경태아버지의 눈물콧물 연기.

안석환님의 연극스러운 연기와

가제손수건,

그리고 이변의 오버스런 대사와

붉은 눈동자까지

이건 무슨 패러디냐며

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씬이었지만,

난 웃을 수가 없었다.

 

자식을 잃은 경태아버지의 비통함이

눈에 보이고 내맘에 들어왔기때문이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어디에 묻을 것인가?

과연 묻을 곳이 있기나 한 것일까?

가슴속에 품고

그 모습 그대로

죽은 나이 그대로

죽은 자식은 성장하지 못하지만,

그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끓는 비통함은

커져만 간다.

 

그 사랑과 비통함이 커져 갈수록

그는 현석, 준수형제에 대한 원망역시

키워 갔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가시는

자기 속으로도 향해서

자신 또한 망가뜨린다.

 

휠체어 탄 경태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이 그렇게 망가지면서까지

죽은 자식에 대한 통한과 사랑,

준수 현석형제에 대한 원망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에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대사속

준수가 감옥에서 보냈다는 세통의 편지.

감히 어떻게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편지를 썼는지,

그 오만함에 치를 떨며

뜯어보지도 않았다는 그 세통의 편지가

궁금했다.

 

그간 그날의 사건을

준수, 현석의 시각에서만 바라봤던 나에게

그날의 희생자, 경태를 생각하게 했다.

 

준수가 아무리 죗값을 치루었다 한들,

한 생명과 견줄 수 있겠는가?

그날의 사건이 사고였다 한들

죽은 경태가 살아올 것인가?

죽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부모의 애통함이 시간이 흐른들

식을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준수는 과연 어떤 맘으로

어떤 생각으로 경태아버지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가만가만 더듬어보니,

이와 유사한 소설이 있었다.

 

우리에겐 '비밀', '용의자X의 헌신'이란

일본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란 소설이 있다.

 

이래저래 책정리를 하지 않아,

엉망이 된 이방저방 책장을 뒤져서

겨우 먼지 켜켜히 쌓인 책을 찾아

다시 읽었다.

웬간해선 소설을 다시 읽지 않는데

그만큼 난 준수의 편지가 궁금했다.

 

2.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츠요시는 이삿짐을 나르는 막일을 하며

생계와 동생의 학비를 책임지는 소년가장이다.

동생은 고3, 츠요시는 스무살을 갓 넘겼을 나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계를 책임지시던 어머니의 과로사,

단 둘이 남게 된 형제.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동생에 대한 사랑과 기대로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려한 츠요시의 모습에

준수의 모습이 겹쳐졌다.

 

고된 막일을 하다가

허리마저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된 츠요시.

그리고 대학을 포기하려하는 동생 나오끼.

어떻게 해서든 동생만은 대학에 보내고 싶었던

츠요시는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고

또 실행에 옮긴다.

 

이삿짐 나르던 일을 시작할 즈음 만났던

부잣집 할머니를 떠올리고

그 집에 가서 돈을 훔친다.

 

그리고 무사히 나오려는 찰라

거실 탁자위에 놓인 군밤봉지에 눈길이 간다.

동생이 무척 좋아하는 군밤이다.

그 군밤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편해보이는 소파에 기대

리모콘으로 텔레비젼을 켜본다.

가정의 안락함을 느껴본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 소리에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츠요시는 허리가 아파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강도살인으로 붙잡힌다.

아마도 15년형을 선고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동생 나오끼에게

편지를 보낸다.

 

주로 동생에 대한 염려, 안부,

교도소내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

별 내용은 없는 그런 편지들.

동생을 그렇게나 사랑했고

동생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어했던 형은

감옥안에서 동생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게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걱정과 죄스러움을 담은

편지를 매달 한번씩 쓰는 것뿐.

 

감옥 밖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동생 나오끼는

또 다른 감옥에서 살인자 형을 둔 죗값을

치뤄내며 살아가고 있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편견과 차별로

둘러싸인 또 다른 감옥.

 

살인자의 가족이란 이유로

알바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겨우겨우 취직했다 해도

금방 들통나서 해고되고,

어렵게 어렵게

겨우 겨우 폐기물 처리하는 곳의

파견직사원으로

형과 똑같은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오는 검열도장이 찍힌

형의 편지는 그런 나오끼에게

주홍글씨였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굴레였다.

 

그 편지로 인해

주변인들이 나오끼가 살인자의 동생임을

알게 되고 그후로는 알게 모르게

차별이 존재하고...

나오끼는 또 피하고...

 

겨우 찾았던 음악에 대한 꿈역시

형으로 인해 좌절된다.

형으로 인해 연인과도 헤어지게 된다.

 

자신을 위해 나쁜 선택을 했던 형이기에

형에 대한 죄의식과 연민이 있던 나오끼였지만,

이런저런 시련으로 형의 편지가 싫기만 하다.

첨엔 읽기도 하고 답장을 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오자마자 찢어 버린다.

그리고 형이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

형은 또 물어물어 이사한 곳으로 편지를 한다.

 

나오끼는 시련으로 인해 단단해지기도 하고

또 꿈을 찾아가기도 한다.

 

형의 죗값에 자신의 시련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받이들이기도 한다.

편견과 차별 또한 당연한 죗값임을 인정하고

묵묵히 받아낸다.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차별을 받아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기도 하여

이사를 하기도 직장을 옮기기도 한다.

살인자가족의 이웃으로 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웃들에 대한 배려로.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나

나오끼는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며

죗값을 치러내고 있다.

 

그리고 형과의 절연 또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죗값이라는 결론을 낸다.

형또한 동생과의 절연역시 형의 죗값으로

치뤄야 하는 거라고

야멸차게 마지막편지를 보내고 절연을 한다.

이제 자신에게는 형이 없다고...

형역시 동생은 없는거라고...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겉모습이 끊어졌다고 끊어진게 아니다.

형이란... 동생이란... 가족이란...

 

우연히 예전에 같이 음악하던 친구에게서

교도소 위문공연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형을 떠올리고

형이 수감될 당시 했던 부탁을 떠올린다.

피해자 할머니에게 향을 올려달라는 부탁...

 

한번 갔었으나 차마 용기없어서 못들어갔던

피해자의 집을 다시 찾아

그 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형은 그 아들에게도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보냈다.

주로 동생에 관한 이야기, 죄스러움에 관한 이야기.

사소한 교도소일들...

 

그 아들은 경태아버지마냥 편지를 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보내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보내지 말라하면 이 사건이 끝나는건데

과연 자신이 이대로 이 사건을 끝내도 되는건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형은 마지막편지를 끝으로

그 아들에게 편지를 더이상 하지 않았다.

 

동생의 절연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그간 자신의 편지가 동생을 괴롭혀 왔던 사실이

너무도 충격이었다고

그리고 할머니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또한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뼈아픈 자각의 편지를 끝으로...

 

형이 보낸 마지막편지를 읽은 나오끼는

교도소 위문공연 제안을 받아들여

형이 있는 교도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존 레논의

'이매진'이란 노래를 부르며

고개숙인 형의 모습을 보며

이 기나긴 소설은 끝이 난다.

 

'이매진'은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노래라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편견과 차별은 당연하다고 한다.

거기에 정정당당하게 맞설 것인지,

때론 피해 갈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어느게 옳은 것인지는 모른다고...

애매모호하게 그렇게 끝이 난다.

 

3. 준수의 편지

 

츠요시는 그 아들에게 죄스럽다고

기회가 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참회하고 싶다는 편지를 늘 보내왔었다.

반야심경을 읇는 심정이라고 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준수역시 그랬을까?

비록 자신이 저지른 일은 아니었지만

비록 사고였지만

자신이 감당하기로 결심한 순간

준수는 이미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뼛속 깊이 경태에 대한 죄의식이 새겨져 있었다.

현석대신 죄와 죄의식 모두

떠안기로 한 것이다.

 

준수가 왜 그랬을까?

늘 의아했었으나 눈물콧물 경태아버지를

본 순간, 이해했다, 준수의 선택을...

준수는 그 아버지의 비통함이

그 권력이 과실치사를 살인으로 바꿀 것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경태와의 주먹질에서는 당당하게

현석의 편을 들 수 있었지만

경태의 죽음에서는 그렇게 현석을

보호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안 준수는

그 죄를 자신이 짊어짐으로 현석을 보호하려 했다.

권력의 남용에 대한 원망역시 없다.

묵묵히 받아들인다. 죄의식또한 껴안았기에...

 

모두가 죄가 없다고 억울해 하는 감옥에서

준수는 '아뇨... 저는 죄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저 예쁜 모습으로...

 

그날의 사건으로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연인이 될 것이고

누군가의 아비가 되었을 한 생명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기막힌 죄의식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저렇게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심정으로 참회의 편지를

경태아버지에게 보냈겠지...

그리고 그 편지 또한 경태아버지에겐

고통임을 짐작하기에

세통에서 멈추었겠지?

 

그리고 도희를 걍 스쳐지나갔다면

찾아갈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할 말이 있었다는 것 또한

그 편지와 일맥상통하겠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남은 생을 걸고서라도

참회하고 싶었던 준수.

그러나 지금은 도희를 깊이 사랑하기에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남은 생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기에

망설여진다는 준수.

 

어쩌면 진실을 감추었기에

더 단단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준수가

어떻게 묵묵히 죗값을 치르고

편견과 차별을 받아낼지

또 어떻게 참회를 할지...

준수의 꿈의 성취와 함께

잘 따라가보고 싶다.

 

4. 쓰고나서

 

아~ 이렇게 어렵게 글쓰기는 또 첨이다.

보통은 생각이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돌고 떠돌아서 쏟아내기 위해서

정리하기 위해서 글을 쓰곤 하는데

이번에는 참 이야기를 끌어내는게 어려웠다.

 

그럼에도 쓰고 싶었다.

이 드라마의 큰 축인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넘 슬프고 아픈 이야기라서

늘 외면했던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

경태의 죽음에 대해서

경태가족의 비통함에 대해서

그로 인한 준수와 현석의 죄의식에 대해서...

 

첨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한 드라마이기에

그 생명을 잃게 한 준수와 현석의 죄의식또한

이 드라마의 큰 축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결국 억지로 끌어낸 생각이기에

좋은 글은 되지 못한다.

쓰기 힘든 글은 읽기도 고역이다.

 

그래도 이틀내내 꾀 피우면서

끙끙대면서 겨우겨우 이어왔기에 그냥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