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70이 되어서 (뭐 그때까지 살아있다고 치자.)
50년간 아련하고 애틋하게 간직했던 사랑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 (뭐 섬뜩하지만 남편은 죽었다 치자.ㅋ)
무엇보다 세상일에 닳고 닳으면서
50년간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나 있을까?
비록 나의 겉모습은
주름살이 늘어가고 아랫배가 나오고 윤기를 잃어가지만,
비록 나의 속모습은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속물이 되어 가지만,
빛나는 청춘시절,
이루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랑 하나 간직하고
어쩌다 비라도 내리면
어쩌다 첫눈이라도 내리면
어쩌다 슬픈 노래라도 들으면
깊이 파묻어 둔 그 사랑을 꺼내서 잠시 추억에 잠기고
눈물 한방울이라도 흘린다.
그것이 자기연민이든,
다람쥐 쳇바퀴도는 일상에서
잠시 튕겨져 나오는 감상이든,
그런 짧은 순간들이 내 단조로운 삶을
잠시나마 빛나게 해 주는 건 사실이다.
레터스 투 줄리엣의 클레어 할머니는
그런 첫사랑을 50년이 지나 끄집어 내어
용감하게 찾아 나선다.
사랑엔 늦었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로맨틱 걸 소피(맘마미아에 나왔던 아만다)의 조언으로.
늘 십년이 지나서 그를 만나면 어떨까?
내나이 40이 지나서 그를 만나면 어떨까?
내나이 60이 되어서 그를 만나면 어떨까?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아무도 없는 혼자가 되었을 때 그와 이웃이 되면 어떨까?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곤 했던 나는
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궁금해서 죽을 뻔 했다.
그래서 그래서 클레어 할머니는
과연 첫사랑 로렌조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로미오를 만날 수 있을까?
할머니가 된 줄리엣은 할아버지가 된 로미오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아니, 로렌조할아버지는 클레어할머니를 기억이나 할까?
마치 내 자신이 클레어 할머니가 된 마냥
두근두근 설레기도
로렌조가 할머니를 못알아 볼까봐,
기억하지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봤다.
그리고 로렌조 할아버지가
제~발~ 할머니 기억속의 그처럼
로맨틱하고 멋지고 품격높은 사람이길 바랬다.
로렌조를 드디어 찾았다는 확신이 들자
도망가려고 했던 클레어 할머니.
그는 나를 15살소녀로 기억할텐데,
지금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이는 걸 두려워한 그맘이
절절히 공감이 되어서 울 뻔 했다.
그러면서도 늙은 모습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로렌조 할아버지이길 바랬다.
내 바램대로 그는 멋지게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
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도 역시 늘 가슴속에 순수하게 간직했던
첫사랑을 감격스럽게 알아보고 안는다.
아! 너무도 멋졌다.
이런 건 이렇게 판타지가 되어 주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영화지 않는가?
영화에서 이런 판타지,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클레어할머니의 첫사랑찾기여행을
기꺼이 함께 했다.
부드럽고 유쾌한 영화음악과
까칠하지만 멋진 영국신사 찰리와 소피의 아웅다웅 사랑,
푸근한 이탈리아의 풍광이 너무나 잘 어우러진 여행이
무척 설레고 즐겁고 따뜻했다.
부드러운 영화음악이 좋아
집에 와서 찾아봤더니,
운좋게도 뮤직비디오가 얻어걸렸다.
이쁜 사진과 함께...
"레터스 투 줄리엣" OST - LOVE STORY - 테일러 스위프트
혹시라도 나처럼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혹시라도 가슴속에 어떤 사람 하나 간직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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