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나른하고 감미로운 추억으로의 여행 (골든 슬럼버를 보고 나서)

쁘띠뜨 2010. 8. 30. 17:59

 

 

1. 추억속으로

 

와우~ 왠지 이들에게서 비틀즈 분위기가 난다.

비틀즈에 심취했고 식문화연구회(?)라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사랑도 우정도 나누었던 이들.

아오야기, 하루코, 카즈오, 모리타.

 

누구나 그렇듯이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그때 꾸었던 꿈이 있었고

그때 함께 누렸던 문화가 있었고

그때 사랑이 있었고

그때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구나 그렇듯이

그 청춘은 소리없이 흘러가서

어느덧 사랑도 꿈도 고민도 무뎌진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간혹 비라도 내린다면

간혹 그 시절 누렸던 문화의 한자락이라도 붙잡는다면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 때를 추억할 것이다.

 

골든 슬럼버는 바로

그런 추억으로의 감미로운 회귀이다.

 

총리 암살범으로 조작되는 아오야기의 탈출극을 통해서

관객을 나른하고도 감미로운 추억으로 몰고간다.

 

긴박한 헐리웃식 액션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철저히 배반될 것이다.

나의 남편이 바로 그랬으니까.

내내 지루해 했으니까.

 

반면 늘 추억을 그리워하며

감상에 빠지는 나는

마치 내가 다시 빛나는 청춘으로 돌아가서

그 시절의 친구들과 무언가를 꾸미는 것처럼

나른하고 행복한 착각에 빠져서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이래서 나는 차분하고 친절한 일본영화가 좋다.

 

여배우 린카를 치한에게서 구해주어 유명인이 된

아오야기가 옛친구 모리타를 만나 낚시를 하러 간다.

그러나 모리타가 데리고 간 곳은

낚시터가 아니라 일본 총리 퍼레이드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오야기는

친구가 건넨 물을 마시며

그들이 심취했던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를 따라 부르면서

나른한 추억으로의 꿈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곧이어 일본 총리는 폭발사고로 살해되고,

아오야기는 살해범으로 지목되고 도망을 다닌다.

 

아오야기의 도망다니는 길이 바로 추억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옛친구 모리타는 아오야기가 살해범으로 지목될 거라는 진실을 말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옛후배 카즈오는 아오야기를 경찰에게 넘기려다가 다시 구해주고 경찰에게 강펀치를 맞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옛애인 하루코와의 추억.

동물원으로 가는 어느 숲속에 방치된 카즈오의 모텔겸용 고물자동차.

그 자동차의 이름이 무언지 기억하려면

씨엠송을 부르면 된다.

한사람이라도 즐거워,

두사람이라도 즐거워,...

다섯사람이라도 즐거워, 다음에 나오는 자동차 이름.

(우리에게도 그런 추억의 씨엠송정도 있지 않은가?)

 

하루코는 그 고물자동차의 밧데리를 교환해 줌으로써

아오야기가 도망갈 수 있게끔 도와준다.

 

아오야기는 그렇게 그들의 추억을 하나씩 더듬어가면 된다.

추억 하나하나가 바로 그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불꽃놀이의 추억.

늘 넷이서 붙어 다니던 그들의 틈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하루코와 아오야기의 달콤하고 은밀한 키스.

모두가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에 시선을 빼앗길 때를 그 찰라를 노린 상큼발랄한 하루코.

 

맨홀뚜껑을 뚫고 하늘로 오른 불꽃놀이에 경찰들의 시선이 가 있을 때,

맨홀뚜껑속으로 사라지는 아오야기.

물론 그 작전과 수행은 하루코의 몫.

 

빛나는 청춘의 추억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들의 기억과 그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 꾸미는

아오야기 탈출극은 그렇게

그들 각자에게는 추억으로의 소풍을 잠시나마 선물했다.

 

그리고 보는 나도 잠시나마 나른하고 달콤한 꿈을 꾸었다.

 

영화의 대사 하나도 그냥 들어가지 않고

어느 캐릭터 하나도 그냥 들어가지 않았다.

모두가 복선을 가졌고 모두가 의미있는 인물들이었다.

굉장히 잘 짜여진 영화였다.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무척이나 달콤했다.

 

2. 낯익은 이들

 

최근에 일드를 무지하게 많이 봤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나온 이들이 모두 낯이 익다.

근데 딱 누구다,라고 알 수 있는 건,

하루코역의 다케우찌 유코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런치의 여왕, 프라이드, 장미의 꽃집등에서

무지무지 많이 봤으니까.

 

아! 후드망역의 하마다 가쿠역시 알아봤다.

워낙 독특한 인상이니까.

프로포즈 대작전에서 야마삐의 친구로 나왔었다.ㅋ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르는 후드망의 정체가 이사람인걸 알고서는

살인범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너무나 선하고 유머러스하게 생겼지 않는가?

 

주인공 아오야기역의 사카이 마사오는 끝끝내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을 해 보았다.

세상에~ 엔진에서 자상하지만 깐깐한 원칙주의자였던 보육사로 나왔던 이였다.

와우~ 그 답답한 인간이 이렇게 선량한 로맨티스트로 변신하다니, 못알아볼 만했다.ㅋ 

 

기억날 듯 날 듯 나지 않았던 여배우 린카,

그녀는 버저비트에서 야마삐 여친의 절친으로 나온 칸지야 시호리였다. 

 

아오야기를 꼬드겨 헬기를 사고 배우게 했던 인물로 나온 이는

역시나 버저비트 야마삐의 배신한 옛여친으로 나온 아이부 사키였다. 

 

그냥 너무너무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다.ㅋㅋ